작성일 : 19-09-19 21:01
자기권리 포기와 의무만을 행하는 겸손
 글쓴이 : 리쥬벼
조회 : 13  

마가복음 9:33 ~ 37

주품이 큐티

{자기권리 포기와 의무만을 행하는 겸손}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쌔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원어사전

가버나움:Kapernaouvm(2584, 카페르나움)

가버나움 Capernaum.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카페르나움/ 가버나움은 '나훔(위로)의 마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위로의 마을'이다.

어린아이:paidivon(3813, 파이디온)

어린 아이 very young child, 유아 infant.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파이디온(Hdt. 이래)은 파이스(paiv", 3816)의 지소사로서 7세까지의 '어린 아이, 갓난 아이'를 의미하며, '어린 노예'(남, 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낮추는(타이노시스) 것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아니하며,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며, 강요하지도 않으며, 주의 뜻과 말씀 아래 깊이 겸손히 허리를 굽히며, 주께 완전히 복종하며 이것으로 행복하며 만족한다.

예수님의 품 속의 어린 아이는 그를 쳐다 보았고, 그를 의지하였고, 그의 하신 일에 만족했다. 이것이 어린 아이의 겸손이요, 공손이었다. 이 아이는 아무 것도 주장하지 않았고, 아무런 공로도 내세우지 않았고, 어떤 업적도 자랑하지 않았다. 이것이 아이의 자연 상태였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큰 자의 영적 상태의 실례를 드시기 위해 이 아이의 예를 드셨다.

눅 18:17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임명된 그리스도의 증인들(참조: 마 10:40 눅 10:16 요 13:20), 어린이들(본 구절에서), 가난한 자들(마 25:35-마 25:45 참조: 막 9:41), 기도하는 자들과 예배하는 자들(마 18:20 참조: 요 15:4이하)에 적용되어 있다. 이 구절들에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을 학대하는 자들(아마 그들의 행위의 의미를 깨닫지도 못하는 자들일 것임)은 무서운 책임을 지게 된다는 유추적 결과도 내포되어 있다.

# 갈릴리 해안가의 북서쪽 가버나움에 주님과 제자들은 선교여행을 하십니다. 먼저 가버나움이란 지명을 살펴봅시다. 오늘 주님의 말씀주제와 같이 일맥상통하는 지명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그 뜻은 위로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겸손을 강조하기 위해 말씀을 하셨고 그 겸손한 자는 위로를 하는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 위로보다 구박 학대하는 자는 교만의 모습이요 저주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형제간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나는 주님을 위해 뭘 했으니 내가 더 높아 하늘 나라에서 더 기업이 많아 등 이 땅과 천국에서 누가 더 높으냐를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교만한 모습을 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평정하시며 어린 아이 같이 어린 자를 섬기는 것이 하늘 나라의 높은 자이며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가 진정 하늘 나라에서 높은 자라 하십니다. 여기서 교만한 자의 끝판 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자기의무를 져버리고 자기 권리만을 빨리 찾으려는 가룟유다인 것을 봅니다.

그는 내가 주님을 섬겼기에 이 땅에서 권세를 가져 천하를 호령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겸손의 왕으로 죽음까지도 내려놓으시는 겸손하신 분이란 걸 알고 자신도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을 알았을 때 그 길을 포기하고 자신의 권리 찾기에 박차를 가합니다. 예수님을 팔아 버리고 최대한 자기 소유를 확보하려 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댓가를 바라고 자기 권리만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회개한 다른 제자는 다릅니다. 주님을 섬겼다고 이 생에서 권세와 부를 누리는 권리보다 주님의 제자로서 그 의무를 다합니다.

죽음을 위협 당하는 일과 가난의 위험이 있어도 이 땅에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제자로서의 의무만을 다합니다. 그 결국은 무엇일까요 그 째째한 자신의 권리를 찾은 가룟유다는 자살하고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타오르고 반면 그 제자들은 영원히 천국에서 보석 면류관을 쓰고 보석 집에 생명 강가에서 생명 과실을 영원히 누리며 매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제자의 모습에서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사와 가정에서도 이것은 다 적용이 됩니다.

내가 늙으신 부모님께 무얼 드렸다고 부모님 집과 모든 것이 다 내 것이고 내 필요에 따라 부모님을 내 쫓으려는 사람이 있고 나는 부모님께 헌신한 것이 내 의무일 뿐이니 여전히 이 집은 부모님 집이고 여전히 헌신하겠다는 자녀가 있습니다. 전자는 자기 권리만을 찾으려는 탐욕의 사람이요 저주를 받고 후자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금생과 내생에 영원한 복이 있습니다. 그 어린 아이같이 겸손한 자는 누구를 상징할까요

다만 어린아이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자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를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이런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는 자에게 그 상급이 있다고 하며 또는 어린아이를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합니다. 온오프라인에서 불신자의 학대가 절대 적지 아니 합니다. 그러나 학대자는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학대하고 있으며 그 심판이 어떠할지 예상은 해야 합니다.

또한 교만한 자의 핍박은 그 시기하는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중에 아벨의 정성과 섬김을 보았을 때 그를 닮거나 배우거나 하는 마음이 아닌 가인은 아벨의 제사가 열납 되어 많은 이와 하나님께 칭찬 받는 것이 너무 시기가 나서 그 아벨을 쳐 죽이는 것을 봅니다. 가인은 나이 많은 형으로 동생 아벨에게 형으로서 권리를 찾아 자기가 더 칭찬을 받아야 하고 조금도 동생을 본 받으려거나 이해하려는 겸손이 없는 것입니다.

그 핍박 속에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떠한 죄악인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깨닫으려 하지 않고 그 시기와 자기 권리만 찾으려는 행동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그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다면 그들의 교만한 행동은 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려는 우주의 하나님 앞에 무서운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여전히 현대의 가인은 동생 아벨을 학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괴롭히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그 현대의 가인은 회개하여 위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자기 권리만을 찾는 교만을 버리고 의무만을 행하고 권리를 나누어 주는 겸손을 행해야 합니다. 또한 집안이든 사회든 어디든 열심히 헌신하고 있는 사람을 칭찬하고 위로하고 겸손히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무 아래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자루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헌신하는 나무는 영원히 자랄 것이요 교만하고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고 찾는 교만한 나무는 잘라 땔감으로 태워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겸손의 가정 겸손의 나라 위로만 가득한 가정 위로만 가득한 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지만 세상은 자기권리와 탐욕 속에 분쟁이 더욱 심해지는 나라와 가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교만한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옵시오며 자기 교만도 깨닫지 못하고 죽어가는 멸망하는 무지한 짐승이 되지 않게하여 주옵소서 먼저는 그 겸손의 시작은 하나님을 알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척도이오니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충만히 이루어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위로와 사랑 충만한 가정과 이웃 나라가 세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